회식 때 '소주 한잔에 삼겹살' 외쳤다간..

2009. 4. 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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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희동 기자]

▲ 오늘은 무얼 먹을까?

직장인의 또 하나의 고민

ⓒ 이희동

으레 직장인들에게는 퇴근 후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그냥 집에 가기는 맨숭맨숭하고, 그렇다고 회사에 할 일 없이 남아 있기는 처량해 친구와 한잔하자고 약속잡을 때 하는 그 고민. 그렇다. 바로 그거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아마 비가 오는 날이라면 그 고민은 덜 할 것이다. 습관적으로 막걸리에 파전을 외칠 테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날이라면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한 잔에 대한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고기는 어제 먹었고, 회는 그제 먹었고, 그렇다고 그냥 밥만 먹은 뒤 이차 술집을 가려니 시간이 부담되고.

저번 주 2개월 만에 가진 동기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입사 4년 차. 이젠 동기들 모두 적지 않은 일을 떠맡은 위치인 지라 예전처럼 자주 보기는 힘들었지만, 다행히 결혼과 같은 대소사가 우리의 끈을 이어주고 있는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2월에는 결혼식을 앞둔 나 때문에 동기모임을 가졌고 이번에는 4월 말에 결혼하는 동기 때문에 모인 우리들.

저녁 8시쯤 약속된 장소에 나가 동기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비록 두 달밖에 안됐지만 인천·서울·부산 등으로 흩어져 만나기 힘든 만큼 서로의 안부와 함께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회사 돌아가는 것에 대해 다들 할 말이 많았다. 특히 회사의 경우 사장이 바뀐 터라 더욱 할 말이 많았다.

그러나 계속 서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터, 우리는 자리를 옮기기로 했고 그제야 예의 그 똑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디서 무얼 먹을까? 어디를 가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동시에 한 사람 이야기에 주목할 수도 있고, 술 먹는 주류와 술 먹지 못하는 비주류가 함께할 수 있으며,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우리의 의견은 자연스레 고기와 회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고기 집과 횟집만큼 위의 조건들을 갖춘 곳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굳이 밥을 찾지 않아도 배를 채울 수 있고, 밥을 다 먹고 담소를 나누어도 다른 손님들 눈치 볼 필요 없는 그곳.

결국 우리의 의견은 고기, 그중에서도 돼지 삼겹살로 모아졌다. 돼지 삼겹살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식단이 어디 있겠는가.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고기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삼겹살. 우리는 거금을 들여야 하는 횟집 대신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노래 부르며 고기 집으로 향했다.

'금겹살'이 된 삼겹살

▲ 직장인의 애환과 함께하는 삼겹살

회식의 주된 메뉴

ⓒ 이희동

그러나 가뿐한 마음도 한순간. 고기 집에 들어가 메뉴판을 펼친 순간 우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돼지 삼겹살의 가격이 1인분에 무려 1만원이었던 것이다. 꼴랑 200g에 1만원!

물론 강남에 위치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소갈비를 같이 팔아 고깃값이 대체적으로 비싼 식당임을 감안해도 삼겹살 1인분에 1만원은 부담스러운 가격임이 분명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는 1인분에 8천원 정도 하던 가격을 이번 돼지고기 삼겹살 가격 파동과 함께 올렸다는 것이었다.

엊그제 뉴스에서 평년 가격 대비 인상 돼지고기 삼겹살 48%, 감자 40.6%, 배추 85.3%, 고등어 54.7% 운운할 때만 하더라도 그런가 보다 하며 남의 일인 듯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했건만, 막상 술자리에서 먹으려 하자 기가 막힌 삼겹살의 가격이었다. 소위 금겹살이 되어버린 삼겹살.

아마도 많은 이들이 삼겹살 가격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삼겹살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그 용도 때문일 것이다. 삼겹살이 어떤 음식인가. 비싼 소고기를 마음껏 먹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소주 한 잔의 안주로서 최고 각광을 받아왔던 대체재 아니던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라는 궁합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삼겹살이 대중적이고 서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60~70년대 탄광촌에서는 광부들이 진폐증을 이겨내기 위해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했다지만, 그와 같은 신화가 지금까지도 내려올 수 있는 것은 결국 삼겹살이 가지고 있는 서민적인 이미지 덕분인 것이다.

막상 오른 삼겹살 가격을 보고 있으려니 결혼 이후 헐거워진 나의 지갑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안 그래도 침체된 경기와 함께 줄어든 월급. 게다가 이제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새신랑으로서 터무니없이 오른 삼겹살의 가격은 가혹함 그 자체였다. 퇴근 후 마음 편하게 소주 한 잔에 고기도 한 점 하기 어려운 시대.

정부의 서민 물가 관리

▲ 소주 한 잔과 삼겹살

오늘 끝나면 한 잔?

ⓒ 이희동

작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은 세계적인 원재료 급등으로 물가가 폭등하자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50개 품목 집중 관리'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고유가·고환율·고금리의 압박 속에 물가의 급등세가 워낙에 심상치 않았던지 '시장'을 맹신하던 정부가 그들의 철학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서민 물가 관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혹자들은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어디로 사라졌느냐며 비아냥거렸으며, 또 혹자들은 특정 상품 가격의 관리는 박정희 때나 했던 시대착오적이며 오히려 공산주의에 가까운 정책이라고 비난했었다.

특히 정부의 50개 품목에 대한 기준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었는데, 라면과 자장면은 포함되지만 국수와 짬뽕은 안 되고, 과일은 오로지 사과만 포함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기준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어쨌든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위해 주요품목을 관리하겠다던 MB 정권. 그렇다면 그 가격이 48%씩이나 인상된 삼겹살은 소위 MB물가 품목에 들어가지 않은 걸까? 삼겹살은 서민들의 식품이 아니라 사치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물가에 대한 걱정이 작년 초보다 수그러든 요즘 정부는 MB물가를 관리하지 않는 걸까? 역시 MB물가는 임시방책이었을 뿐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일까?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작년 7월에 있었던 국회 본회의 민생 현안 자리에서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과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나누었던 대화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송영길 의원

"삼겹살 1인분이 얼마인지 아나." 강만수 장관

"모른다."

"MB물가에 포함되는데 모르나."

"돼지고기는 포함돼 있다."

"삼겹삽은 모르고 돼지고기는 아나."

"모른다."

"모르면서 (물가를) 어떻게 관리하나."

"제가 직접 사고 있지 않아서…."

"대한민국 장관으로서 버스 등의 가격을 모르고…."

"버스는 주말에 타서…."

"그럼 삼겹살 안 드시나."

"삼겹살 잘 안 먹는다." 물론 정부는 물가비상상황이 끝났다며 MB물가지수를 지난해 말 공식 폐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MB물가 인상분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5.7%로 소비자물가지수(4.9%)와 생활물가지수(5.2%)의 인상률보다 높게 나타난 이상 이를 방치해 두어서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다. 물론 애초부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리라 짐작되지만, 어쨌든 현재의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은 또다시 서민들의 시장바구니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주 한 잔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이 시끄러운 세상. 정작 정부가 소주 한 잔 생각나게 만들었다면 사람들에게 최소한 소주 한 잔은 할 수 있게 해줘야 예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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